
서울시는 서울영화센터를 시네마테크 본래 기능으로 복원해야 한다
"책 없는 도서관, 그림 없는 미술관을 지으려는가?"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이하 영화인연대)는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의 핵심 기능을 약화시키고 그 정체성을 흔드는 방식으로 서울영화센터(구 서울시네마테크) 개관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밝힌다. 이는 단순히 영화계와의 약속을 파기하는 차원을 넘어, 서울 시민이 누려야 할 고품질의 문화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서울영화센터를 둘러싼 최근 논란은 단일 시설의 문제가 아니다. 수백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공공 문화시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능 부전(不全)' 상태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본질이다.
서울시가 지난 15년 동안 쌓아온 합의 구조를 일방적으로 변경한 결과, 서울 시민이 누려야 할 세계적 수준의 시네마테크가 껍데기만 남은 채 개관될 상황에 놓였다. 지금 서울시는 책 없는 도서관, 그림 없는 미술관을 짓듯, 수장고·마스킹·연구 기능이 빠진 '반쪽짜리 시네마테크'를 시민에게 내놓으려 하고 있다.
서울시네마테크 사업은 2010년 공식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제기된, 시민을 위한 문화적 숙원 사업이었다. 시네마테크,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는 오랜 시간 국내외 고전 예술영화 상영 및 아카이빙, 독립영화 상영, 교육 등을 통해 영화 문화의 저변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불안정한 임대 구조로 인해 시민들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데에는 늘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은 특정 영화인들의 공간 요구가 아니라, 시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적인 공공 공간에서 최상의 영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회적 투자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시민을 위한 공공성을 존중하지 않았다. 건립준비위원회를 일방적으로 해산하고 사업명을 '서울시네마테크'에서 '서울영화센터'로 변경했으며, 핵심 기능인 수장고·열람공간·전용 상영관·연구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개관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납세자인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지는 공공기반시설을 졸속으로 추진하여, 결과적으로 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문화적 혜택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처사다.
서울시는 "필름 상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시네마테크의 기능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발상이다. 영화관의 기본인 '마스킹' 시설조차 배제되어, 관객은 스크린 여백의 빛 공해 속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 이 상태에서는 예술영화 상영에 필수적인 세로 자막조차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이는 국제적인 시네마테크 표준에 한참 미달하는 '불량 상영 환경'이며, 시민들에게 불완전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다.
또한 시네마테크는 단지 영화를 상영하는 시설이 아니다. 영화 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여 후대에 남기는 것이야말로 시네마테크의 존재 이유이자 필수적인 책무다. 그러나 서울영화센터는 아카이빙의 심장인 수장고조차 갖추지 못했다. 영화의 역사를 보존하지 못하고 유산을 남길 수 없는 시설은 시네마테크가 아니다. 서울시가 수장고 없는 개관을 강행하는 것은 공공 기록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원천적으로 포기한 것이며, 서울 시민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고유한 영화 유산 아카이브를 가질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꼴이다.
더욱이 서울시는 '효율화'라는 미명 하에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충무로영상미디어센터 오!재미동' 등 풀뿌리 거점을 강제 폐쇄하고 있다. 이는 서울영화센터라는 거대 시설을 짓기 위해 기존 생태계의 모세혈관을 잘라내는 것과 다름없다. 접근성이 생명인 지역 미디어센터의 기능을 충무로 거점 시설 하나로 대체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다. 서울시는 기존 사업이 중복된다고 주장하지만, 두 기관은 역할과 구조가 전혀 다르며 서울영화센터는 이를 대신할 구체 계획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서울시가 이러한 정책 변경을 시민과 영화계의 의견 수렴 없이 추진했다는 점이다. 운영자문위원회 설치는 공론화 과정의 대체가 될 수 없으며 민주적 절차의 회복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시네마테크와 같은 공공 기반시설은 단기적 개관이 아니라 장기적인 공공계획과 투명한 협의 구조 속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는 다음을 요구한다.
첫째, 서울시는 시네마테크 본래 취지-국내외 영화유산의 보존, 열람, 연구, 정확한 상영 환경-을 복원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껍데기뿐인 시설을 제공하지 않도록,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수장고, 열람공간, 연구·교육 기능, 전용 상영관 등 기본 인프라를 완벽히 갖춰야 한다.
둘째, 영화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즉시 복원하고, 사업명 변경과 기능 조정 전 과정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셋째, 서울영화센터를 이유로 기존 공공 영화문화사업의 축소나 종료를 정당화하는 정책은 중단해야 한다. 새로운 시설은 기존 생태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며 확장해야 한다.
넷째, 서울영화센터 운영은 단기 실적 중심의 위탁 방식이 아니라, 장기 공공계획과 전문성 기반의 운영 체계로 재정비해야 한다.
이 성명은 단체나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소중한 세금이 올바르게 쓰이고 시민의 문화권이 온전히 지켜지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영화인연대는 영화계와 시민사회와 함께 시네마테크 정상화를 위한 논의와 행동을 이어갈 것이다.
2025년 11월 26일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여성영화인모임, 영화수입배급사협회, 영화제정책모임, 전국독립영화전용관네트워크,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지역영화네트워크, 커뮤니티시네마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 한국영화미술감독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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