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이에게>(2020) 배채연
2019년을 마치고 2020년이 될 때에, 나의 언니는 도미니카공화국에 있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펼쳐도 언니가 사는 곳을 짚어내려면 머뭇거리느라 시간이 갔다. 언니와 나는 긴 주기로 이따금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때 그 편지가 다시 읽고 싶어서 메일함을 뒤적거렸다. 한국에서 스무 시간의 비행으로야 닿을 수 있는 곳에서 한국보다 열세 시간 느리게 살고 있다는 말로 언니의 편지가 시작했다. 붙어 살 때는 말도 안 되게 싸워댔던 언니와 나는 스무 시간의 비행이 필요한 거리를 두고서야 서로의 언어를 궁금해했다. 엄지와 검지로 구글맵을 한참 좁히면 드러나는 직선과 점선의 경계와 좌표. 측량하고 분석하고 편집해서 만들어낸 지도상의 축척과 규격들이 과연 어떻게, 어째서 유효한지 요원하기만 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만 처음 말하는 것들로 편지를 채웠다.
효율과 편리, 체제로의 편입, 방대한 정보와 통계, 그것을 다시 지표로 삼아 만들어낸 값과 수치들. 그리고 그 사이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거나 삭제되는 몸. 영화는 동생에게 건강해야 한다며, 원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아프지 말아 달라는 걱정과 당부로 끝맺는다. 국가적 통합과 통제, 관리, 당연시된 폭력의 체계, 그 환란을 견뎌내는 것은 몸이다. 부재함으로써 무언가를 증명하여야 하는 망연함을 버티는 것 또한 몸이다.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세계 위, 이곳과 저곳에 있는 몸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편지를 쓰며 이어진다. 그 몸들의 연결이 알 수 없는 세계를 가로지른다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계에서도 조금 더 지내볼 수 있다.
2019년과 2020년, 언니와 내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위를 걱정하며 무력화하지 않았던 그 시기를 기억한다. 그것만은 항상 유효했다. 언니가 있는 곳이 여름이라는 걸 잊고, 감기 조심하라는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양나래 씀
◾️<채민이에게>
배채연 | 2020 | 다큐멘터리 | 18분 | 컬러
◾️줄거리
코로나19 팬데믹 속 이동 제한이 권고되는 헤이그에서 감독은 서울의 동생에게 영상편지 연작을 전송한다. 우리는 '올드 노멀'을 돌려받기를 원하나? 이 오토 픽션 다큐멘터리는 한국과 네덜란드의 역학 조사, 생물 정치와 군중 통제 맥락을 병치하며 국가적/개인적 감시가 서울의 퀴어 커뮤니티와 유럽의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낙인화와 폭력에 기여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퍼플레이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purplay.co.kr/service/detail.php?id=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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