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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평등위원회18

이달의 성평등 영화 9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김보람 (2022) 김보람 딸 채영은 15살이 되던 해 거식증 진단을 받는다. 엄마 상옥은 딸의 증상이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며 딸의 치료에 전념하지만 채영의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병과의 지긋지긋한 싸움은 병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힌 가족 관계 안에서 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품을 불려내며 두 사람 바깥으로 질문하고 확장된다. ‘섭식장애’라는 단어를 들으면 구역질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처음부터 섭식장애란 젊은 여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아름다움을 좇는 일이 형편없이 뒤틀려 버린 허영을, 나는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은 결코 섭식장애를 미디어가 쌓아온 낡은 관습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섭식장애는 몸과 마음이 겪어내는 일로서, 가족 관계라는 흔들리는 미명 아래 요동치는 복잡한 역학의 하나로.. 2023. 9. 6.
이달의 성평등 영화 8월 <신기록> 허지은, 이경호 (2019) 허지은, 이경호 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여자가 운동장에서 만나는 이야기이다. 경찰 공무원 준비생 소진은 체력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교 운동장을 뛴다. 그녀가 훈련장을 벗어나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게 된 배경에는 자신의 공간을 허락 없이 침범해 오는 어느 남성의 구애 활동 때문이다. 구애와 폭력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소진은 칼같이 거절할 수도 없다. 소진의 동생은 그녀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거절하기’를 추천한다. 여느 때와 같이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던 날, 철봉 매달리기를 하던 현숙을 보게 된다. 현숙은 가정폭력을 겪고 있는 피해 당사자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경험이나 사연은 알지 못하지만 멀리서 서로를 지켜보고, 알아본다. 자신이 겪은 폭력을 세상에 알리고, 연대의 손길이 곳곳.. 2023. 7. 31.
이달의 성평등 영화 7월 <두 사람> 반박지은 (2022) 반박지은 경계를 넘어도 경계가 있다. 옛 포르투갈인들처럼 수평선을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바다를 건너도 여전히 마주하게 되는 차별의 시선은 또 다른 문제다. 김인선 씨와 이수현 씨는 20대에 만나 70대를 맞이했다. 30년째 잡고 다니지 못하던 손은 바다를 건너도 여전히 잡을 수 없다. 버스에서 나란히 손을 포개고 앉은 두 사람을 비추며, 카메라는 손은 못 잡지만 서로는 여전히 서로의 반려인이라는, 당연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장면을 담아낸다. 나는 두 사람이 방 안에서 교차하는 장면을 유심히 본다. 오늘의 날짜 같은 걸 함께 되짚고 서로의 생활양식에 사소한 불평을 하기도 하는, 두 사람이기에 벌어지는 모든 사소한 일들을 조용히 지켜본다. 식탁에 앉아 더듬더.. 2023. 7. 5.
이달의 성평등 영화 6월 <보드랍게> 박문칠 (2022) 박문칠 “김순악”, “김순옥”, "요시코", "마마상", "위안부", "왈패", "개잡년", "기생", "식모", “엄마"… 영화는 여러 여성의 목소리로 위의 호칭들을 읊는 소리가 들려오며 시작된다. 영화의 포스터에도 적혀 있는 이 호칭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순악의 삶을 드러내는 파편들이다. 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기록한 김순악의 구술을 토대로, 그의 출생부터 사망 이후까지를 착실히 쫓는다. 영화는 크게 네 가지 형식을 취한다. 첫째는 김순악이 등장하거나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담은 아카이브 푸티지이고, 두 번째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김순악의 삶이며, 세 번째는 ‘시민모임’ 활동가들의 인터뷰이고, 마지막은 김순악의 증언 녹취록을 읽는 미투운동 당사자들의 모습이다.. 2023. 6. 2.
이달의 성평등 영화 5월 <미싱타는 여자들> 김정영, 이혁래 (2022) 이혁래, 김정영 가난해서, 여자라서 공부를 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일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여성들이 주를 이루었던 70년대의 평화시장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평화시장은 너무나 고된 일터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끈끈한 유대감을 해 준 장소였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갈망하던 이들이 함께 투쟁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세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과 함께 청계피복 노동조합원으로 싸웠던 조합원들의 생생한 증언과 구술을 은 차분하고 담백하게 엮어간다. 청계피복 노동조합을 꾸려가던 이들에게는 삶터 그 자체였던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을 사수하기 위해 농성했던 ‘9.9 사건’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비롯하여 긴 세월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2.. 2023. 5. 3.
이달의 성평등 영화 4월 <까치발> 권우정 (2021) 권우정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 1년간 이어진 가슴이 철렁하던 순간들, 그리고 의사에게서 들은 한마디. “아이가 뇌성마비일 수 있어요.” 아이는 7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까치발로 걷는다. 장애가 의심되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기는 불안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감독은 다른 장애 자녀 엄마들의 이야기로 향한다. 그 모든 일을 먼저 겪은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불안을 해소할 답을 찾고자 한다. 그렇게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멋있고 훌륭한 말들과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그러나 감독 본인의 불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저 또 하나의 남의 이야기로 머무를 것만 같았다. 영화와 삶이, 상담 치료와 촬영이 뒤섞인 은 그렇게 8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권우정 감독이 딸 지후와 함께 인지발달센터를 찾았을 때 이런 말.. 202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