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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평등위원회

이달의 성평등 영화 9월 〈한강가에 모여〉 조현진

by 한국독립영화협회 2026. 9. 30.

 

〈한강가에 모여〉 (2025) 조현진

 

대학교 4년 동안 기숙사와 자취, 하숙을 전전했고, 졸업하고는 친구 집에서, 아는 언니 집에서 살았다. 오지필름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지인과 집을 쉐어하기도 했다. 이 좁은 부산에서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들을 지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지필름 활동을 시작할 무렵,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당장 살 곳을 찾아야 했기에 익숙했던 학교 주변에서 집을 알아봤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의 집은 방과 분리된 부엌에 아궁이가 있는 아주 오래된 집이었고, 화장실도 집 밖에 따로 있는 공용화장실이었다. 집을 보러 간 날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아저씨가 무서워 ‘여기서는 진짜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보증금을 전액 부담한 친구와 월세를 반반씩 내기로 하고 함께 살게 된 것이 나의 또 다른 주거생활의 시작이었다. 

 

결혼을 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짐을 싸고, 새로운 집을 찾아 옮겨 다니는 시간을 반복해야 한다. 내 몸 하나 누일 곳을 찾는 일이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삶의 연속이라는 것을, 나는 집을 옮길 때마다 실감하고 있다. 언제쯤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언제쯤 집 때문에 불안하지 않아도 될까. 이런 질문은 내 집을 마련한 뒤에도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조현진 감독의 영화 〈한강가에 모여〉는 그런 나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영화다.

 

감독은 고향 대전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고자 했던 1년 동안 네 번의 이사를 거쳐 이촌동에 자리를 잡는다. 바퀴벌레를 견디지 못해 떠난 집, 이전 집보다 두 배가 넘는 월세를 감당하며 옮겨간 집을 지나, ‘중산층이 산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중산아파트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서울, 한강 변에 있는 집.’ 이렇게만 들으면 번듯하고 여유로운 집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감독이 찾은 집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한강 변의 풍경과는 거리가 있다. 중산층이 산다고 하지만 원주민은 20% 남짓밖에 남지 않은 아파트 단지. 그곳에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부동산 투기꾼들의 문의와 자본의 욕망이 서려 있다.

 

이촌동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풍경은 더욱 낯설어진다. 1910년대 서울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이곳은 서울로 들어오지 못한 빈민과 저소득층의 주거지가 되었다. 비만 오면 한강의 물이 넘쳐 물난리를 피하기 어려웠던 이촌동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가장 먼저 개발 지역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렇게 한때 밀려난 사람들의 동네였던 이촌동은 이제 재난위험시설(안전 등급 D)인 오래된 18평 아파트조차 10억 원을 훌쩍 넘는 기이한 공간이 되었다.

 

영화 중반, 감독은 이곳에 살다 보니 한강이 쳐다보기도 싫어졌다고 말한다. 반려견 배점이와 사랑하는 동거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공간에서 감독은 자신도 미처 보지 못했던 존재들을 마주한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말없이 죽임당하고 피해받는 달팽이, 지렁이, 송충이 같은 작은 생명들이다. 영화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도시에서 밀려나는 다른 존재들에게로 확장된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감독은 자신이 이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처음에는 낡고 무서워 보였던 아파트가 어느 순간부터 발을 들이면 안심이 되는 공간으로 바뀌어 가는 자신의 모습도 돌아본다.

 

내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그 자리를 잃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혐오했던 바퀴벌레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초반 감독은 첫 집에서 바퀴벌레 때문에 ‘집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네 번째로 당도한 집에서 바퀴벌레 역시 개발과 인간의 욕망에 밀려난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내가 살기 위해 밀어내고 싶었던 존재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 혐오의 대상이었던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겹친다. 

 

한편, 감독은 30년 넘게 생계를 이어온 노점상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투쟁 현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감독은 또 다른 ‘밀려나는 존재들’을 만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롭고 예쁘고 편리한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해 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채 쫓겨난다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일궈 왔음에도 그 자리를 지킬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영화는 한참 동안 노점상들과 함께하는 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다시 한강가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감독과 동거인은 다시 이사를 고민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감독의 집 안에서 바라보는 불꽃놀이 장면이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불꽃과 달리 그 소리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압도적이다. 창문 안에서 바라보는 불꽃놀이는 아름답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는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존재하는 것들, 그 풍경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밀려나는 존재들에 대해 영화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감독의 동거인이 ‘자신에게 더 이상 집은 없다’고 한 것처럼 감독의 카메라는 아름다운 것을 응시하는 대신 집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쩌면 집이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에만 머물러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내가 있을 자리를 찾기 위해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것. 나만의 자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런 질문이 계속된다.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야 하는가.

 

〈한강가에 모여〉는 한강으로 대변되는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밀려나고 사라지는 존재들을 바라보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다시 내가 떠나온 집들을 떠올렸다. 수없이 짐을 싸고 풀며 ‘내가 있을 곳’을 찾아다녔던 시간들. 어쩌면 집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할 자리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 문창현 씀


 

 

〈한강가에 모여〉 조현진 | 2025 | 다큐멘터리 | 48분

 

◾️ 시놉시스

서울에서 1년 동안 네 번의 이사를 거쳐 한강변의 높고 반지르르한 아파트들 사이에 놓인 낡고 낮은 아파트에 도착했다. 도시 한가운데서 밀려나는 존재들을 바라보며, 내가 왜 계속 자리를 옮겨왔는지, 이 도시에서 버티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 속에서 이 도시에서의 나의 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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