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지연습〉(2025) 마민지
영화 〈착지연습〉에는 바닥에 몸을 붙이고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지러운 순간을 벗어나 땅에 몸을 기대고 싶어진다. 마민지 감독은 예술계 내 성폭력 피해 생존자와 연대자로 구성된 '상-여자의 착지술' 팀의 5년을 카메라에 담았다. '상-여자의 착지술'은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이후 각자의 현장에서 홀로 분투하던 이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로, 그 이름은 트라우마 치유 기법인 '그라운딩(Grounding)'에서 출발했다.
미투는 이미 지난 일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사건이 표면에서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이 있다. '회복'이다. 그 회복은 대개 피해 생존자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진다. 왜 회복은 늘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되는가. 그리고 회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지연습〉이 붙드는 자리가 정확히 여기다. 이 영화가 말하는 회복의 대상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밥을 먹고 일하며 사람을 만나는 '일상'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완벽한 착지 대신, 무릎을 굽혀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발을 딛는 법을 이들은 서로에게서 배운다. 이들에게 '착지'는 거창한 담론 이전에, 상처 입은 몸이 다시 걷기 위해 익혀야 하는 가장 물리적인 생존의 기술이다.
카메라는 이들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가며 마주하는 혼란과 갈등, 연대와 균열의 순간들까지 그저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그 응시가 오래 머무는 자리는 결국 몸이다. 이들은 때로 아기처럼 바닥을 긴다. 때로는 서로의 등에 기댄다. 외로움과 연대의 경계에서 서로를 놓지 못하고 붙잡는 이들의 무게가 거기에 실려 있다.
영화 속에서 '탁'은 자신의 책 《내 꿈은 자연사》를 쓸 때, 그 제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주문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주문은 이 프로젝트를 지나오며 비로소 진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각자의 시간 속에 고립된 채 과거와 미래의 불안에 붙들려 있던 이들은 지금, 여기에 두 발을 딛는 힘을 함께 배워 나간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의 본뜻이 '사람 사이'에 있다는 것을, 이들은 몸으로 다시 쓰고 있다.
〈착지연습〉은 8월 30일까지 극장 개봉을 위한 텀블벅 펀딩(https://tumblbug.com/grounding)을 진행하고 있다. 그 긴 시간을 딛고 걸어 나오고 있는 이 단단한 기록이 더 많은 관객 앞에 온전히 가닿을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가 함께 착지할 차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 김주연 씀

〈착지연습〉마민지 | 2025 | 다큐멘터리 | 107분
◾️ 시놉시스
출판계와 문단계의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 탁은, 미투 이후 무너진 일상 속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씻고, 집 밖을 나서는 일상은 반복되는 긴장과 자신과의 싸움으로 채워진다. 그런 탁이 발 딛고 선 곳은 생존자와 연대인들이 함께 만든 예술-회복 공동체 ‘상여자의 착지술’이다. 이들은 매주 안전한 공간에 모여 간식을 나누고, 돌아온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털어놓고 함께 울고 웃는다. 또한 다양한 성폭력 생존자와 연대인을 대상으로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안전한 공유지를 확장해 나간다. 하지만 이 공동체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 기대가 어긋나고, 상처가 드러나며, 관계는 균열을 겪기도 한다. 영화는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하고, 움직이고, 연결되려 애써온 지난 5년의 시간을 따라간다. 탁과 ‘상여자의 착지술’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더딘 회복의 능선을 따라 각자의 착지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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