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보통의 하루〉(2023) 김주연
지구 종말. 살면서 한 번쯤 상상해 봤을 순간. 눈이 보이지 않아 지팡이에 의지한 시각장애인 수인, 걸을 수가 없어 휠체어에 의지한 지체장애인 재희, 두 사람은 지구와 혜성과의 충돌이 예고된 어느 날, 혼비백산하며 정신없이 대피하는 사람들 틈을 지나 여느 때처럼 복지관에서의 정기 모임을 찾았다 마주친다. 아무도 오지 않는 복지관 앞에서 영원히 혼자 남게 되는 것을 상상한 재희 앞에 나타난 수인이다. 어디로들 떠난 것인지, 아수라장이던 길은 어느 틈에 고요해졌다. 두 사람은 이 틈을 타 평소 가보고 싶었지만 쉬이 가보지 못했던 곳을 함께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가 내친김에 서로의 몸에 기대어 살면서 꼭 하고 싶었던 것까지 하나씩 해보기로 한다.
둘만 걷는 길 위, 하천 옆 벤치 위 등을 찾아다니며 머무는 이 둘에게는 얇은 풀잎을 만지작거리는 미세한 소리의 감각들까지 또렷해질 만큼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이 장소들에 있는 것들과 함께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감독은 지구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순간에도 풀잎의 부스럭거림과,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들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그러는 사이 그 시간을 깨트리는 재난 문자 수신음이 지구와 혜성의 충돌이 임박해오고 있음을 알리고 사이렌 소리까지 들리며 지구 종말로 향하는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재희처럼, 어젯밤까지만 해도 끝까지 혼자일 것이라 생각했다는 수인은 무서워하는 재희를 데리고 재희가 하고 싶어 하던 것을 하기 위해 옥상에 오른다. 온 땅이 흔들리고 두두두둥 천둥소리가 들린다. 하늘은 온통 붉어졌다. 이어지는 서로의 고백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둘. 그 순간 지구는 혜성과 충돌하고, 충돌의 순간, 비로소 이 둘은 꿈꿔왔던 가장 보통의 하루를 만끽하게 된다.
충돌. 지구 종말의 순간, 영원히 혼자일 거라 생각했던 두 사람에게 이날의 충돌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기존의 두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수인과 재희는 보통의 하루를 획득한다. 감독은 충돌 직전, 손의 촉감으로 서로의 얼굴을 탐색하며 짧게 속삭이던 둘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하나의 감각만을 따라가지 않는 감독의 이런 시도들 또한 영화를 감각하는 방식의 전복을 꾀하는 순간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각자의 감각을 따라 이 순간을 상상해 보길 바란다.
요즘 가끔은 차별과 혐오로부터 세상을 리셋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장 보통의 하루〉에서처럼 삶을 전복하고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어떤 운명적인 충돌인지도 모른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 박소현 씀

〈가장 보통의 하루〉김주연 | 2023 | 극영화 | 20분
◾️ 시놉시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고 예고된 날의 오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수인과 재희는 평소에 가 보지 못했던 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해 보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하며 하루를 보내는 두 사람의 앞에 점점 세상의 끝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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