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우린 같지만 달라>(2020) 김규림, 김민교, 박혜진
- 대안과 보편 사이에서 성평등을 말하기
2020년 겨울, 공공 영역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미디어교육(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해야 청소년 성소수자가 교육 환경 안에서 안전하고도 동시에 자유로운 미디어 표현과 매개를 할 수 있을까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피드백은 어떠했나. 방향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정말 빠른 시일에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날카로운 질문을 받았다. 자신있고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2023년 가을, 나는 더 나이를 먹었다. 근묵자흑이라고, 어쩌다 공공 종사자의 보편적인 감정에 공감하게 된 것인지, 나는 조금 더 안전지향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솔직하게 말해 백래시에 지친 부분도 있고 말이다. 이에 가까운 미래 한국사회 성평등 문제를 두고 나의 입장을 말하는 데 망설이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 원고를 쓰기 위해 머릿속에 메모해두었던 김규림과 김민교 그리고 박혜진 감독의 <명: 우린 같지만 달라>를 관람하고나서 나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명: 우린 같지만 달라>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오늘날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가 모여 대안적인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 경험을 기록한 단편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를 보았고, 나는 부끄러웠고, 노트북을 닫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연출자 그룹 “노똘복”이 다큐멘터리에서 구축하는 한국 동시대 청소년 성소수자의 시공간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분히 대안적이다. 첫째, 그들은 비청소년 세대가 침입하지 못하고 오로지 청소년만이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공론장을 건축했다. 여기서 느껴지는 어색한 감각은 과연 우리가 청소년 성소수자가 안전하고도 자유로울 수 있는 퍼블릭 스페이스를 고안해 왔는지 반성하게 한다. 둘째, 영화는 학교 안 청소년이 제도 바깥에 같고도 다른 또래 사회구성원의 일상을 만나게 한다. 생애 처음 학교를 조퇴하고 마을버스 창문 바깥 너머를 보았을 때의 감정이라 비유해 보면 어떨까?
한편 “노똘복”과 공동체 구성원은 끊임없이 자신이 대안 혹은 대안의 대안 안에 갇혀있음을 환기한다. 대안 속 보편과 대안 바깥의 보편 간 단차에 대해 담담하게 발화한다. 하지만 그 장벽 앞에서 비관하기보다는 유쾌한 넘어서기를 도모한다. 이렇게 김규림, 김민교, 박혜진 감독이 공동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명: 우린 같지만 달라>는 2023년 10월 4일 기준 여성영화 OTT “퍼플레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연결과 소통,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연출과 기록의 재구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독립 OTT를 통한 유통과 매개 모두, 대안과 보편 사이에 균열을 내며 성평등을 말하는 뜻깊은 임팩트 시네마 실천으로 작품을 평가하게 한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 임종우 씀
◾️ <명: 우린 같지만 달라>
김규림, 김민교, 박혜진 | 2020 | 다큐멘터리 | 24분 | 컬러
◾️ 시놉시스
노똘복은 성미산마을의 퀴어청소년인 노랭, 똘추, 복순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노똘복은 전국 각지의 퀴어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며, 그렇게 만난 퀴어청소년들과 같으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볼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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