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독립영화링크사이트맵 RSS 피드
  • 한독협소식
  • HOME > 한독협 소식 > 한독협소식
[KIFV뉴스레터 vol.4] [LETTER] “10월의 어느 멋진 날들”
뉴스레터 자료실 / 2016.10.28

[한국독립영화협회 뉴스레터 vol.4 : 161031]  

 

 


 

File
Tag
 
댓글 (0)
[KIFV뉴스레터 vol.3] [NEWS] “이번 달에도 만나요, 독립영화 정기상영회” - 독립영화 쇼케이스
뉴스레터 자료실 / 2016.09.01


 

File
Tag
 
댓글 (0)
[KIFV뉴스레터 vol.3] [INTERVIEW] (1) “흔하지 않은 좋은 선배의 예” -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뉴스레터 자료실 / 2016.09.01

[한국독립영화협회 뉴스레터 vol.3 : 160902] 


 

인터뷰이권현준

인터뷰어차한비

사진차한비

정리차한비

일시2016818일 목요일 저녁 6

장소성영태 커피하우스

 

이번 인터뷰는 한 통의 메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97,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이지연 사무국장이 쓴 [활동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메일이다. 지난 뉴스레터 2호에서 인디스페이스 활동가들을 만나고 난 후,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2009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이듬해 정부로부터 사업예산 지원을 받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면서 한독협 또한 강도 높은 집중감사를 받는다. 그를 근거로 영화진흥위원회는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 등의 사업자를 새롭게 공모했고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파행적으로 강행한다. 그 결과 인디스페이스는 문을 닫고 미디액트는 광화문에서 상암동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때 이지연 국장은 함께 하는 활동가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 우리가 어렵지만 돈이나 상황 때문에 조직을 떠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활동가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사업을 다시 꾸려야겠다고, 친구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고, 그리고 돈을 벌고 싶다고. 편지를 쓰는 본인조차 괜찮지 않을 텐데 무척이나 애를 쓴 편지라고 느껴졌다. 당시 일하던 활동가들이 그 메일 뒤에 길고 짧은 답장을 덧붙였다. 나도 모르게 훔쳐봐서 죄송합니다라고 중얼거리면서 편지들을 읽었다. 전부 보고 나니 여기서 일했던, 그리고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는 선배를 만나고 싶어졌다.

 

권현준은 현재 대구의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얼마 전 한독협 상영분과의 새로운 운영위원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탈선derailed>, <나쁜 병원> 등을 연출한 감독이자, 한독협 내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가 있던 시절에는 배급팀장으로 일했다. 그러니까, 그는 ‘2009을 함께 겪어낸 사람 중 한 명이다. 지난 818, 17회 대구단편영화제가 막을 내린 후 한독협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 온 그와 만났다.

 

차한비 상영분과 운영위원이 되셨어요.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맡게 되셨나요.

 

권현준 한독협에서 독립영화 활동을 처음 시작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활동영역을 넓혀올 수 있던 것도 한독협 내 활동이 있으니 가능했고요. 한독협 운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사실 운영위원이라는 자리가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잖아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되는 측면이 있어요. 제가 대구에 있으니 물리적으로 꽤 멀리 떨어져있기도 하고요. 운영위원을 하겠다고 한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회원 분들한테 소개도 제대로 못 하고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네요. 오늘 인터뷰를 계기로 마음을 다잡고 인사도 드리려고요. 그러면서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한비 상영분과에는 어떤 분들이 계신가요?

 

권현준 상영분과는 회원 수가 많지는 않아요. 쉽게 말하면 상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죠. 다른 분과 회원들이 제작 중심이라면 상영분과는 강릉씨네마떼끄나 청주의 씨네오딧세이처럼 상영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많고, 저 역시 오오극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나 싶어요.

 

독립영화, 그리고 한국독립영화협회

 


 

차한비 언제부터 한독협을 아셨고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권현준 오래 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1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독협이라는 단체보다 한독협에서 활동하는 선배를 먼저 알게 됐어요. 대학 선배인데 막상 학교 다닐 때는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졸업 후에 우연히 만났어요. 명함을 받았는데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팀장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선배가 지금 인디스토리에 계시는 김화범 이사님이에요(웃음). 대학 때 방송이나 영상매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영상제작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독립영화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 골방에서 선배들이랑 같이 영화 보고 그랬어요. 저렇게 영화가 나오는구나, 이런 주제로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다른 직장을 다니던 중에 이런저런 일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화범 형이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팀에서 사람 구한다더라. 관심 있으면 지원해봐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20066월부터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차한비 한독협 내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가 있던 시절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당시 배급지원센터의 역할과 함께 팀장님이 진행했던 일들도 말씀해주세요.

 

권현준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에서 팀원으로 일하다가 화범 형이 인디스토리로 가시고 나서 제가 배급팀장을 맡게 됐어요. 당시에 한참 진행했던 일이 공동체상영운동네트워크였어요. 독립영화 상영활동을 하는 전국의 여러 단체들과 네트워킹 하면서 상영 활성화를 위한 일들을 했어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역 상영활동에 대한 지원이 있던 때였고 배급지원센터에서 그 사업을 맡아서 운영했죠. 상영활동 지원과 네크워킹 활동, 이런 식의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그 무렵에는 전국 상영활동가들이 모여서 컨퍼런스도 하고 되게 재밌었어요. 상영활동 하겠다는 사람들도 지역마다 있었고, 일본에서 커뮤니티 시네마 하는 분들 초청해서 얘기도 들어보고, 심지어 영국까지 가서 견학도 하고요.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지원이 있으면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으니까 좋잖아요. 안타깝게도 배급지원센터가 무너지고 그런 지원들이 끊기면서 어려워졌죠. 그래도 지역에서 해왔던 경험들이 있으니까, 어쨌든 대구는 오오극장을 만들었고 강릉 같은 경우에도 신영을 운영하고 그렇게 이어지기는 했어요. 하지만 안정적인 지원과 공간이 없으니 활동 자체가 어려워진 곳들도 있죠.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민과 함께 하는 극장과 영화제

 



 

차한비 현재 일하고 계신 오오극장에 대한 소개와 하시는 일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권현준 오오극장은 대구의 독립영화전용관이에요.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상영이라는 독립영화전용관의 기본적인 역할에 더해서 지역의 제작 활성화를 목표로 영화관을 설립하게 됐어요. 대구에 동성아트홀이 있기는 하지만 독립영화전용관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독립영화 상영 횟수가 많지 않았어요. 독립영화 편수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용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죠. 그리고 극장을 중심으로 지역 영화인들의 제작을 돕고 인적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됐어요.

 

그곳에서 저는 얼마 전까지 프로그램 팀장으로 일했어요. 프로그램은 극장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영화를 개봉하고 상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상영하는가도 굉장히 중요해요. 예컨대 <그림자들의 섬>(연출 김정근)이 개봉을 한다고 했을 때, 영화 상영과 더불어 지역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프로그램 적으로 기획하는 역할을 담당했어요. 영화를 보는데 어떻게 같이 봐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 역할인 거죠. 그래서 지금은 기획홍보 팀장으로 직책이 조금 바뀌었어요. 앞서 말한 기획이나 홍보 쪽으로 좀 더 포커스를 맞춰서 극장의 다양한 역할을 고민하고 알려내는 자리에요.

 

차한비 말씀하신 프로그램 기획과 관련해서 좀 더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권현준 지난 7‘2016년 대구 사회적경제 주간에 맞춰 [사회적경제 영화 특별상영회]를 진행했어요. 그냥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있고 관련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들도 있고요. 오오극장 또한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기획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단순히 상영만 할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등 관련 종사자들도 같이 모여서 특별전 형식으로 열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사회적경제 관련 중간 기관에 제안을 했고 예산을 지원 받아서 기획전을 열었어요. 개봉 영화에만 집중하다보면 이런 기획을 놓칠 수 있는데 오히려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커뮤니티 시네마의 역할이라고 했을 때, 지역 안에서 이 극장이 갖는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상영 기획과 프로그래밍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오오극장은 설립부터 지역 사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민과 함께 하는 영화관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니까요. 앞서 말한 제 직책 변경도 그런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 거죠.

 

차한비 얼마 전 대구단편영화제에 처음 가봤어요. 오오극장이라는 공간도 영화제 참가자들의 분위기도, 그리고 영화들도 좋았어요. 특히 애플시네마상영작들이 좋더라고요. 대구단편영화제는 어떤 면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요.

 

권현준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지는 4년 정도 되었어요. 대구단편영화제는 처음에는 작가주의 영화제라는 타이틀로 시작했고, 지역에서는 얼마 안 되는 단편영화제 중 하나예요. 올해 17회를 맞았고,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가 설립된 시기와 거의 비슷하게 시작했어요. ‘애플시네마는 대구경북 지역 기반으로 제작된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섹션인데, 이제 어떤 사람들은 묻더라고요. “왜 애플이야?” 옛날에는 사과가 많이 났지만 지금은 아니거든요. 어쨌든 그 때 당시만 해도 대구하면 사과가(웃음)… 애플시네마는 지역독립영화 제작의 활성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서 만들어진 섹션이고, 다행히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작품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 지역 영화제가 갖는 역할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지원의 경우, 올해는 한 작품을 뽑아서 4백만 원의 제작지원금을 지원하고 내년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했어요. 영화제가 그런 역할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편영화제이기는 하지만 전체 상금 규모는 14백만 원 정도로 적지 않은 편이에요. 이 상금이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추후 제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상금의 규모도 높여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대구단편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본선경쟁 참여감독들이 직접 심사를 하는 거죠. 무척 독특한 구조예요. 감독님들이 영화제 오셔서 놀지도 못 하시고 굉장히 영화를 열심히 보세요(웃음). 


※다음 인터뷰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클릭! 

 

 

File
Tag
 
댓글 (0)
[KIFV뉴스레터 vol.3] [INTERVIEW] (2) “흔하지 않은 좋은 선배의 예” -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뉴스레터 자료실 / 2016.09.01

 

[한국독립영화협회 뉴스레터 vol.3 : 160902] 


  

※ (1)에서 이어지는 인터뷰 (2)편입니다. 


 

“2009, 서울에서 대구로 또 다른 시작

 

차한비 현재 대구에서 극장과 영화제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데, 그럼 혹시 서울에서 대구로 가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권현준 2009년에 대대적인 감사가 있었잖아요.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검찰에 기소되기도 하고, 저도 스트레스와 충격이 굉장히 심했어요. 그 일로 인해서 인디스페이스가 문을 닫았고 배급지원센터도 해소를 하고, 저는 일터가 없어진 거죠. 당시 배급지원센터에 대여섯 명의 활동가들이 있었는데, 그 인원 모두가 한독협 사무국으로 들어올 수는 없는 상황이었어요. 뭔가를 해봤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버티기가 힘들었고, 이참에 좀 쉬어볼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당시 사귀던 친구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호주에 갔다가 여자 친구랑은 헤어지고(웃음) 돌아와서 대구로 갔어요.

 

다시 서울로 오지 않은 이유는, 저는 혼자 살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자꾸 밥도 굶고 셀프-케어가 안 되니까(웃음). 농담이고, 사실 대구에 있으면서 아예 영화 일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운명인지 뭔지 어떤 자리를 갔는데 예전에 대구에서 공동체라디오 방송국 활동하던 선배를 만났어요. 제가 그 방송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조연출로 참여했거든요. 그 선배가 사무실로 한번 놀러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갔더니 일들이 있네?(웃음) 자연스럽게 2년 여 활동을 하다 보니 대구에서 기반이 잡히고 영화도 만들게 되고, 이제는 다시 극장 일을 하고 있네요.

 

차한비 왜 하필 극장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독립영화 활동가로 일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의미와 방향이 있을 것도 같고요. 대구라는 지역 커뮤니티의 성격도 궁금해요.

 

권현준 극장이 있으면 좋잖아요. 대구 인구가 250만인데 독립영화전용관 하나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극장이라는 공간이 여기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극장 일이 좋잖아요. 누군가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죠. 그런 공간에서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흔히들 대구를 보수적이라고 알고 있잖아요. 물론 정치적으로 보면 보수적인 도시인 건 맞지만, 몇 해 동안 활동하며 내부의 굉장히 버라이어티하고 다이나믹한 움직임들을 보고 놀라웠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구에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구나. 우리만 갖고 있는 욕구가 아니구나.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출판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오오극장도 인디펜던트 커뮤니티 내지는 단체들과 함께 출판물을 내보는 실험도 할 수 있었고요. 생각보다 그런 풍경들이 신기할 정도로 펼쳐지고 있더라고요. 오오극장이 지역 내에서 어떤 욕구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다행스러워요. 꾸준히 찾아와주시는 관객 분들이 있고 극장 자체를 아껴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10년 차 독립영화 활동가

 

 

 

차한비 다큐멘터리 연출과 배급을 진행했고, 현재는 극장을 통해 상영활동가로 일하고 계세요. 미디어교육도 하신다고 들었고요.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우세요?

 

권현준 아무래도 상영이 제일 즐겁죠. 누군가에게 영화를 소개하고 보여주는 일이 재미도 있고 뿌듯함도 많이 느껴요. 제작은 하면서 내 영역이 아니라고 느꼈는데(웃음) 그건 또 그만의 재미가 있어요. 지금은 극장 일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제작은 좀 뒤로 미룬 상태인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다면 언젠가 다시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미디어교육은 재미있는 교육도 있는 반면, 정말 일적으로만 접근할 수밖에 없는 교육들도 있어서 아쉬워요. 예를 들어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교육은 교육과정이 4개월 정도로 긴 편이고 참여자들과 즐겁게 풀어 가는데, 어떤 강의는 강사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살짝 심심하기도 해요. 하지만 사실 중요한 생계수단이니까(웃음) 의미를 더 찾아가야죠.

 

차한비 인터뷰 앞두고 이것저것 찾아봤더니 정말 하신 일이 많은 거예요. 독립영화가 만들어지고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경험하신 거잖아요.

 

권현준 그러게요. 독립영화전용관 두 군데에서 일 해본 사람도 많지 않을 걸요.

 

차한비 , 게다가 두 군데 다 창립멤버잖아요.

 

권현준 그것도 그렇네(웃음).

 

차한비 활동 중이신 미디어핀다는 어떤 단체인가요? 홈페이지를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권현준 미디어핀다는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그룹이에요. 활동가들 각자가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어요. 밀양 송전탑 투쟁이 있을 때 가서 결합을 한다든가, 저 같은 경우에는 2014년에 청도 송전탑반대 투쟁 현장에서 한동안 현장 기록하는 역할을 했고요. 개인 활동가들의 모임이다 보니 따로 또 같이그런 느슨한 면이 있어요. 지역에는 현장에 결합하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아쉬운 마음도 있죠. 아무래도 저는 극장 소속이니 해야 할 일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지금 성주에서 사드 반대 투쟁을 하는데, 저는 결합하기가 어렵죠. 그래도 같이 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거 아니면 이거라고 단정하지는 못 하겠고,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차한비 약간 하소연을 하면 저도 친구들한테 미안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서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은데, 예전부터 알던 친구들 또는 여기서 새롭게 만난 친구들이 그 현장에 가서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카메라를 들고, 노래하고, 시위도 하고. 그런 면에서 저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요. 상영회가 있거나 출장을 간다거나 할 때,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괜히 답을 하기가 미안해요. 넓게 보면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아도요.

 

권현준 그런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내 역할이 있고 거기서 의미 있게 역할을 하면 되는 거니까요. 내가 여력이 돼서 함께 하면 좋지만, 과하게 힘을 들이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의미를 좀 더 부여할 필요도 있고요. 지금 내가 둘러싸인 환경 안에서 연결 지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죠.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욕심에 대해 마음을 비우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차한비 벌써 마지막 질문이에요. 팀장님은 10년 넘게 활동가! 저는 10년 후가 잘 상상이 안 돼요. 이 바닥에서(?)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요.

 

권현준 사실은 10년 동안 할 줄 몰랐고(웃음) 중간에 공백기가 있긴 했지만 정말 햇수로 따지면 10년 조금 더 넘었네요. 나도 상상이 잘 안 됐던 바였는데, 활동하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하다 보니 경험치가 쌓이고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이 바닥을 떠나 다른 걸 하기가 힘들어진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어쨌든 요즘에는 미래를 상상하고 그 미래에서 내 삶을 돌이켜봤을 때 어떤 모습이어야 후회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번씩 해보게 돼요. 예전에는 당장 눈앞에 일이 있고 재밌으니까 닥치는 대로 해왔는데, 이제 나이도 마흔을 바라보고(웃음) 언제까지 이런 에너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되고요. 그런데 먼 미래를 그려볼 때, 내가 상상하는 삶이 지금까지 이어 온 궤적하고 무관하지 않더라고요.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아등바등하는 대신 여유를 가지고 소박하게, 재밌게 살고 싶은 마음. 물론 삶의 방식을 놓고 봤을 때 꼭 독립영화가 아닐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내 삶의 방식과 활동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하지 않을까? 물론 의문형이긴 하지만(웃음). 언제 또 뭐가 있을지는 모르니까요. 줄곧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고, 일이라는 측면에서 되돌아봤을 때 인생에서 후회되는 지점은 많이 없거든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불쑥 이런 말들을 듣고 싶었나 봐요라는 고백이 튀어나왔다. 여기에 있었고, 이곳과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선배를 만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은 사실 작은 불안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는 내 활동을 지지하고 긍정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나중에 아무도 몰라주면 어쩌지. 그런 의문과 의심을 품고 앉아 있는 나에게 그는 편안하게 말했다. 10년이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라고, 좋아하는 일들을 하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다고, 문득 돌아볼 때 후회보다는 재미와 보람의 순간이 더 많다고,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활동가로서의 자신의 미래가 여전히 기대 된다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끝)

 

File
Tag
 
댓글 (0)
[KIFV뉴스레터 vol.3] [TALK+LETTER] “눈이 부시게, 기쁜 우리 여름날” - 사무국원 출장기
뉴스레터 자료실 / 2016.09.01

[한국독립영화협회 뉴스레터 vol.3 : 160902]  

 

 

 

유난히 덥고 더웠던 8, 강릉과 대구로 두 번의 지방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각각 올해 18회와 17회를 맞이한 정동진독립영화제와 대구단편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어요. 제 친구들은 영화제가 출장이라니 너무 부럽잖아!” 라며 감탄하는데요. 친구들의 상상과는 약간 다른 부분도 있지만, 즐거운 것은 사실이에요. 영화가 있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이 있고, 영화와 관객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펼친 영화제가 있으니 말예요. : )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방문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여러모로 마법 같은 영화제입니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와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어떤 풍경을 담아가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별이 총총 뜬 밤하늘일 수도 있고, 그 하늘 아래서 보았던 영화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마법이 펼쳐진 듯 아름다운 한 순간, 괜히 마음이 울렁거려서 눈을 감았다 뜨면 눈앞의 풍경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남아 있습니다.

 

저는 정동진독립영화제 하면 세 단어가 떠올라요. 칵테일, 영화, 바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운동장 한편에 [상수동 카페]를 열고 각종 음료를 팔았습니다. 제일 많은 인기를 차지한 칵테일은 이름하야 정동진 칵테일’! 바다 빛을 닮은 파란 색깔의 달콤한 칵테일입니다. 처음에는 주문이 밀려들면 정신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손발이 맞아가는 것이 느껴져요. 아마 내년에는 맛은 물론, 스피드와 서비스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겁 없이 큰 소리를 쳐봅니다ㅎㅎ (+[상수동 카페]의 모든 수익은 영화제를 위해 쓰입니다. 내년에 또 만나요!)

 

 

 

 

[상수동 카페]를 정리하고, 영화 상영도 전부 끝나고, 그럼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어가요. 이제 자러 가냐구요? 그럴 리가요, 드디어 밤이 시작됩니다. 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뒤풀이!! :0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독립영화인의 축제라고 불릴 만큼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찾아 와요. 상영작품의 감독과 스태프, 배우뿐만 아니라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영화제를 즐기러 오신 분들도 정말 많답니다. 그날그날의 고급안주(!)가 준비된 식당에 둘러앉아 몇 번인가 자리를 옮기면서 긴 밤을 보냅니다. 많이 웃고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들다 보면 아, 진짜 정동진에 왔구나 싶어져요. 조금 전까지는 분명 오늘 봤던 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나간 연애를 늘어놓게 되기도 하고요. 누구는 취해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어깨를 껴안고 사진을 찍습니다.

 

취한 채 밤을 보내고 어느새 동이 터올 무렵, 저는 함께 있던 사람들과 바다로 갔습니다. <스틸 플라워>의 정하담 배우, ‘인디플러그송성호 매니저, ‘인디스토리박진후 사원. 각자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 네 사람 모두 새벽 공기에, 바다 소리에, 술기운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비틀거리며 도착한 바다는 눈부시게 반짝였습니다. 일출도 멋있지만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어요. 차가운 바닷물에 발이 잠기는데도 추운 줄 모르고, 술은 깨지 않고, 옆에 있는 하담 씨, 성호 씨, 진후 씨와는 어쩌다 나란히 누워 해맞이를 한 인연으로 불쑥 친구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올해의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마음 가득 담아 돌아왔습니다.

 

 

 

 

 

813일 토요일, 정동진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대구로 떠났습니다. 대구의 무시무시한 더위는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정말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싹 타버릴 것만 같았어요! 여차저차 대구의 유일무이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 도착했더니, 이번 뉴스레터 3호 인터뷰의 주인공! 권현준 팀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극장 안에 있는 삼삼다방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대구단편영화제에 대한 소개도 듣고 극장도 구경했어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로비는 영화제에 참여하는 관객들로 붐볐고, 다음 상영은 벌써 매진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그날 오후에는 전국 각지의 독립영화협회들이 모이는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대구단편영화제 기간 중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한독협도 참석했어요. 대구·부산·광주·대전·전북·제주의 독립영화협회와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는데요. 각 지역의 상황과 정보를 공유하며, 최근 영화계 현안과 독립영화 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뵙는 분들도 많이 계셨는데, 진지하게 말씀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 왠지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자리를 만들고 각각의 고민을 서로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어요. 다른 곳에서는 어떤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고 계신지 궁금해졌습니다.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극장에서 영화를 봤어요. 저는 오오극장에 가면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1번 좌석과 55번 좌석에 앉아 보는 것! 쉰다섯 개의 의자들로 채워진 아담한 극장은 보기만 해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들어가자마자 감탄사가 나왔어요. 오오극장의 오오55개 좌석을 뜻하기도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좋은 극장이란 뜻에서 1부터 10까지 더한 숫자를 의미하기도 해요. 경쟁부문은 한 섹션마다 네 편의 작품을 상영했는데요, 상영을 마친 후에는 감독님과 배우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더위를 가시게 하는 섬뜩한(!) 영화부터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되는 영화까지 풍성한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제가 좋아하는 김예은 배우와 이상희 배우(사심 채우기!)GV에서 만날 수 있던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극장 피서였습니다 : )

 

 

 

 

늦은 밤 맥주 한 캔을 사서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어요. 집에 가는 내내, 대구단편영화제에서 봤던 <중고, >(김은영 연출)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어요. 대구경북 지역에서 제작된 애플시네마상영작이었는데, 15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 동안 그 영화에 푹 빠졌었나 봐요. <중고, >을 통해 마주하게 된 이별의 어떤 순간들이 조금 슬프기도 했지만, 쓸쓸함보다는 고마움이 컸어요.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를 만들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단 생각을 하며 여름 출장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두 영화제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덧 8월이 지났습니다. 이번 편지는 9월에 도착하겠네요. 새 계절을 맞이할 준비도 딱히 못 했는데 바람이 선선해지는가 하면 하늘도 좀 더 높아진 것 같고요, 정말 가을이 오긴 오나 봐요! 오늘은 샌들을 신고 나와서 발이 시리기까지 했는데 햇빛 비추니 등이 따뜻합니다. 여름이 길었던 만큼 가을도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번 달도 즐겁게 보내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File
Tag
 
댓글 (1)
1  2  3  5  6  7 
  검색
후원하기 뉴스레터 웹스토어